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만-페르시아 전쟁(1743-1746) (문단 편집) === 모술 공성전 === [[파일:Afsharid Imperial Persian Colonial Army Artilleryman with Short Barrel Cannon 18 AD.jpg]] [[아프샤르 왕조]] 소속 페르시아군 박격포병의 모습 1743년 9월 14일, [[나디르 샤]]는 20만 대군으로[* 영문위키에서는 4만+a라 나와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 전투병의 숫자는 20만 중에서 만 단위인 것으로 보인다.] [[모술]]지역을 포위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동원한 대포는 390문, 거기에 박격포 230문을 동원한 나디르 샤 역사상 최대 스케일의 공성전이었다. 페르시아 포병대는 소수 유럽제 대형 공성포와 신형 박격포까지 동원해가며 포격을 퍼부었다. 거침없는 포격으로 성벽이 파괴되었으나, 도시민들의 단합으로 임시 성벽이 금방 세워졌다. 당시 모술 지역의 도시민들은 나디르 샤가 지나가는 길에 있던 마을이나 지역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기살기로 저항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성은 포격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간자 공성전]]에서 시도했었던 갱도 공격을 실행하여 일부 성벽을 폭파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더불어 공성용 사다리 1700여개를 동원해 적극적인 도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도성 시도는 성곽이나 탑에 있던 병사들의 사격으로 저지당하고 만다. 그렇게 공성전은 시간이 지체되어 겨울 시즌이 오기 시작하였고, 나디르 샤는 포위를 풀고 병사들을 회군시켰다. 더불어 다른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의 도시들을 공격하던 군사들도 대부분 오스만-페르시아 국경 지대로 회군시키게 하였는데, 이는 겨울 시즌은 물론 [[오스만 제국]] 측에서 협상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과의 협상을 원했으며, 따라서 최대규모의 압박을 지속하다가 발을 뺀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나디르 샤]]의 열정과 의지력이 약화되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불과 10년전의 전쟁에서만 해도, 바그다드 총독을 교체시키고 협상을 재시도한 오스만 제국에게 협박을 바가지로 퍼붓고 재침입한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협상 제안 떡밥 한번에 제 발로 돌아갔으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